First slide
살림출판사가 출판한 책 현재 2,627종  
살림출판사 홈 > 살림의 책 > 작가소개
사마광(司馬光)
주요저서
자치통감 삼국지 (하), 자치통감 삼국지 (상)
작가소개

북송의 진종(眞宗) 말기인 천희(天禧) 3년(1019)에 천장각(天章閣) 대제(待制)로 있던 사마지(司馬池)의 아들로 태어난 사마광(司馬光)은 북송 최고의 정치가이자 뛰어난 사상가이며 역사가였다. 그는 어렸을 때 물독에 빠진 아이를 독을 깨 구해냈을 정도로 명민했다. 자가 군실(君實)인 그는 나이 7세에 이미 집안 사람들에게 ꡔ춘추좌전ꡕ을 강독할 정도로 역사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종(仁宗) 초기 약관의 나이로 진사 갑과에 급제한 후 요직을 두루 거치며 당대 최고의 정치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인종의 뒤를 이어 조카가 뒤를 이어 영종(英宗)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송나라의 재정은 고갈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영종이 5년 만에 죽게 되자 그의 아들 신종(神宗)이 즉위하면서 당시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던 왕안석(王安石)을 중용했다. 이에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소위 신법당(新法黨)이 득세하게 되자 소동파(蘇東坡)를 비롯한 많은 구법당(舊法黨)의 인물들이 권좌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때 구법당에 속해 있던 사마광은 자진하여 물러난 뒤 집필에 몰두하게 되었다. ꡔ자치통감ꡕ은 바로 이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사마광이 총 19년에 걸쳐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만들어낸 공전절후의 거작이었다.
사마광은 ꡔ자치통감ꡕ의 저술을 마친지 얼마 안돼 신종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게 되면서 정계의 전면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불철주야 국사를 처리하다가 이내 건강을 크게 상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 본 지우가 삼국시대 당시 제갈량이 먹는 것은 적은데 격무에 시달리다가 죽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사마광은 이를 무시하고 무리를 거듭하다가 결국 정계에 복귀한지 1년만인 원우(元祐)원년(1086) 9월에 68세를 일기로 서세(逝世)하고 말았다. 사마광의 일생은 어찌보면 ꡔ자치통감ꡕ을 쓰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