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장르가 어떤 것이든 “역사”를 주제로 한 것이라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챙겨본다. 수양제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봐도 통쾌하고,  케이블 TV를 통해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허준”에서 멈춘 채널은 이미 몇 번을 본 드라마임에도 돌아갈 줄 모르고, 과연 “대장금”이 실존 인물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한 “조선왕조실록”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보면서 새롭게 알게되는 역사상식에 줄거워하고, 새로 시작하는 역사드라마는 언제나 시청목록 1순위로 올려놓고 본방사수를 위해 찬구와의 약속까지 미룬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처럼 권력층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사(正史)”를 시대 순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용재총화”,“대동야승”,“여우야담”,“대동기문”과 같은 “야사(野史)”를 통해서 역사 이면에 감춰진 사실들이나 민간에 전승되는 각종 전설과 민담들, 근엄하기만 교과서 속 위인들의 인간적인 일화들은 더욱 쏠쏠하고 즐거운 재미를 준다. 그래서 조선조 여러 위인들의 재밌는 일화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의 어원과 풍습들을 소개하고 있는 박영수의 “조선유사(살림Friends, 2010년 3월)”은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는 그런 책이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대동기문에 이르기까지 정사와 야사를 가리지 않고 두루 참고하여 조선전기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역사 속 위인들, 즉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로부터 명필로 유명했던 조선후기의 선비 추사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교과서나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만나는 위인들의 재미난 일화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의 어원과 풍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위인들의 일화, 예를 들어 맹사성의 “공당문답”, 옛 주인의 원수에게 주술로 복수한 계집종 갑이 이야기, 홍등가에서 만난 기생에게 베푼 은혜로 훗날 국가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게 된 역관 홍순언, 귀신에게 죽을 뻔한 소녀를 구하고 그 소녀와 결혼한 남이장군, 드라마 “이산”에서 그렇게 정조 대왕을 음해하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간택 일화, 악동으로 유명했던 오성 이항복의 어린시절 이야기 등은 는 역사관련 책들이나 “전설의 고향” 등 각종 드라마를 통해서 한번 씩은 들어본,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는 옛날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지겹지 않았던 것처럼, 야사 속 위인들의 일화들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으며, 페이지 중간 중간에 곁들인 익살스러운 만화 컷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더욱 재밌게 하고 있다. 특히 위인들의 일화를 소개하는 각 장의 끝 면에 “문화이야기”라는 별도 페이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듣고 사용하지만 그 연원을 잘 알지 못했던 언어나 풍습의 기원들, 즉 “청맹과니”, “목로주점과 선술집”, “영문(營門)을 모르다”, “흥청망청”, 조선 임금의 명호에 붙는 “조(祖),종(宗)”의 의미 등을 소개하는 부분은 새로운 역사 상식을 알게 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그동안 그저 당연히 여겨왔던 어른 앞에서 맞담배를 피지 않는 풍습에 대한 기원이 궁중에 숙직하는 대신들이 서로 모여 흡연하는 모습을 발견한 광해군이 "입 냄새가 좋지 않다"라고 한마디 한 이후부터 비천한 자는 존귀한 사람 앞에서,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예절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나에게는 특히 인상적이고 재밌는 일화였다. 

 이 책은 이제 처음 역사를 공부하거나 외울 것 많고 딱딱해서 역사라면 질색을 하는  청소년들이나,  정사는 줄줄 꿰고 있지만 역사 속 감춰진 이면의 모습에는 비교적 무관심했던 성인들, 어린 손자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 등 모든 세대가 읽어도 좋을 만큼 쉽고 재미있다. 최근 이야기를 끌어내고 발전시키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시대에 있어서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재밌는 일화들 또한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같은 방식으로 고려를 다룬 작가의 전작“고려유사”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