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자세로 中의 ‘민낯’ 직시하라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1-07 14:00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 김기수 지음 / 살림
“중국에서 청나라가 명나라를 대체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조선은 명 왕실에 조공을 보내고 명의 풍습과 전통을 고수했다. 작은 나라인 한국은 ‘변화에 굴복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급격히 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때 위축된다.”
천하이(陳海)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이 2009년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저녁을 함께하며 한 말이 최근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올랐다. 이 참사관은 “북한의 폐쇄적 외교정책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한국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 후 위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말은 북한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니 한민족 전체에 대한 폄훼는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사실 관계를 오해한 일개 외교관의 실언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이 참사관은 명나라가 청이 건국된 지 8년 만에 망했다는 것을 몰랐다, 변화를 선도하는 모험성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인의 으뜸 특성임을 세계의 지성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에도 무지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의 발언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중국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이 우리가 판단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름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국민은 줄곧 중국을 친구로 대했다. 6·25전쟁에 개입해 통일을 가로막고 막대한 피해를 준 나라에 대한 우호의 감정은 이상스러운 것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인 김기수 세종연구소 국제정치경제연구실장은 “오랜 역사 속에서 너무도 가까이 접촉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관계로, 콤플렉스와 경외심 그리고 (‘때국놈들’ ‘비단장수 왕서방’ 등으로) 비하하지만 두려워하는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심리상태의 표출”이라고 분석한다.
근년에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인들은 중국이 미국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는 종래의 우호적인 감정과 뒤섞인 묘한 경외감,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참에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후 중국의 태도를 접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당혹스러워 했고 또 분노했다. 어떻게 이렇게 명백한 사안에서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두둔할 수 있는가. 과연 중국이 입만 열만 주장해왔던 ‘한반도 평화 유지’의 실체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국제정치학과 경제학 그리고 역사분석적 시각에서 구한다. 그는 당대의 한국인들이 막연한 우호, 공포감에서가 아니라 담대한 자세로 중국의 ‘민낯’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남북을 영구분단시킨 상태에서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시리다’는 뜻)의 입술처럼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북한이 붕괴되거나 개혁개방을 통해 한국, 일본, 미국과 가까워지면 입술 역할을 하지 못하니 중국은 한반도가 영구분단 상태로 유지되기만을 바란다. 중국이 북한을 혈맹으로 감싸면서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원조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민족들과 국경을 다툰 중국 역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민족들에게 수없이 본토를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중국은 ‘인접국과는 잘 지낼 수 없다’는 불신 아래 주변국 전략을 행사해왔다. 인도, 구소련처럼 강대국은 파키스탄, 미국을 끌어들여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책략을, 베트남같이 작지만 똘똘한 나라는 분할 지배 전략을, 티베트처럼 약한 나라는 무자비하게 짓밟는 정책을 써왔다. 한국과 북한은 중국 시각에서 보면 작지만 똘똘한 나라여서 통일되지 못하도록 교란 전략을 펴는 것이다.
저자는 “베트남은 자국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나라(구소련)를 끌어들여 영토적 야심이 있는 중국을 견제했다”며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을 외교의 지렛대로 끌어들인 이승만의 전략이 대중 정책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모델을 차용한 중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2010년 2분기 중국의 총생산은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저자는 그러나 “5∼10년 내에 중국의 고속성장은 반드시 꺾인다”고 확언한다. 구소련이 그랬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그랬던 것처럼 ‘투입 중심의 압축성장’이라는 방식은 임금 등 생산요소비용이 상승했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일본은 그것을 극복할 기술을 갖고 있었으나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여전히 공산체제를 고집하는 중국의 정치는 경제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국제금융위기나 내부의 민주화 열기에 대처할 만한 유연성을 갖출 수가 없는 탓이다. 중국인으로 국제금융전문가인 천즈우(陳志武) 예일대 교수가 “4~5년 내에 부실 채권 등의 문제로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데, 중국 정부가 충격을 분산시켜 연착륙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정치체제의 한계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이 급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국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군사력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스스로의 세력권으로 설정한 서해에서 미국의 주력함대가 군사훈련을 감행하는 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단적이 증거라는 것이다.
국판 240쪽 분량의 이 책은 최근 장정본으로 숱하게 쏟아진 중국 관련 서적들에 비하면 외형의 무게가 떨어진다. 하지만 중국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새로운 각성을 주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 여운이 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중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인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국이 중국과 갈등이 있는 분야는 서로 모른 체했던 구동존이(求同存異) 태도에서 벗어나 서로 독자성을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헤아릴 수 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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