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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출판사홈 > 살림의 책 > 전체도서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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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샤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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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 지음
| 2018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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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 살림인문 |
| 쪽수 : 680 쪽 |
| 가격 : 39,000 원 |
| 책크기 : 신국판 |
| ISBN : 978-89-522-4003-3-93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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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해의 시대’에서 ‘달의 시대’로 나아가게 할 네오샤머니즘.
네오샤머니즘이란, 인간을 ‘본래존재’로 돌려놓을 신물숭배.
21세기 인공지능, 사이보그시대에 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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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철학은 의 철학이며, 달의 철학은 의 철학이다. 해의 철학이 남성적인 ‘지배의 철학’ ‘지식의 철학’ ‘지시(명령)의 철학’ ‘존재자의 철학’이라면, 달의 철학은 여성적인 ‘생명의 철학’ ‘지혜의 철학’ ‘가무(놀이)의 철학’ ‘존재의 철학’이다. 달을 의미하는 월(月)자는 신체(肉, 身)를 의미하고, 이는 이미 신체적 존재론을 내포하고 있다. 남자의 시각은 육체(대상적 신체, 물질)로 연결되고, 여자의 시각은 신체(주체적 육체, 심신일체)로 연결된다. 여자(자연)를 대상으로 보는 남자의 시각 자체(자연과학)가 현상학이다. 남자의 시각은 현상학과 연결되고, 여자의 시각은 존재론으로 연결된다.
네오샤머니즘의 정신을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관점에서 표현하면 위와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동양문명은 달(月, moon)로 상징되는 음양(陰陽)문명, 즉 ‘동양문명=Moon+Sun의 문명’이라면, 서양문명은 해(日, sun)로 상징되는 양음(陽陰)문명, 즉 ‘서양문명=Sun+Moon의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순환하면서 돌아가는 것이 인류문명의 궤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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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서양철학의 한계를 딛고 한국자생철학을 선도하다-김형효·8
추천사|박정진의 철학, 인류 미래의 철학이 될 것-공종원·10
머리말|사이보그시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15
제1장|철학인류학의 성립·23
1. 인류학적 철학, 철학인류학의 태도·25
2. 인간인식의 이원구조와 철학의 이원대립·32
3. 현상학—신(God), 정신(Geist), 유령(Ghost)·55
4. 도가도(道可道)에서 무시무종(無始無終)까지·105
제2장|서양철학의 계보학과 동서철학의 특징·127
1. 서양철학의계보학—현상과 과학을 위한 철학·129
2. 시(詩)철학으로서의 동양철학—상징과 예술과 도덕을 위한 철학·172
3. 동서양 문화와 철학의 상호보완성—존재를 위한 철학·183
4. 하이데거는 왜 일반성의 철학에 이르지 못했을까·202
5. 니체와 하이데거, 그리고 불교적 존재론·261
제3장|동서철학과 종교의 소통·289
1. 동서철학과 종교의 상호소통과 미래·291
2. 존재론의 미래로서의 네오샤머니즘·319
제4장|『천부경』의 현상학과 존재론·345
1. 천지인의 순환론과 현상학의 원환(환원과 회귀)—존재론과 현상학의 화해로서의 샤머니즘·347
2. 『천부경』의 존재론과 현상학·354
3. 천지중인간(天地中人間),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361
제5장|인간이란 무엇인가—자기-내-존재로서의 인간·381
1. 철학적 인간학 대 인류학적 철학·383
2. 네오샤머니즘의 현대적 해석·399
제6장|언어문화와 철학—인도유럽어문화권·한자문화권·한글문화권·445
1. 박동환의 삼표론에 대한 반론·454
2. 샤머니즘과 철학의 불임증에 대하여·482
3. 무(無)의 철학으로서 신체적 존재론·499
제7장|존재론, 여성성, 그리고 네오샤머니즘·521
1. 존재론, 여성성, 그리고 무당·523
2. 한국철학의 완성으로서의 평화철학—일반성의 철학, 소리철학, 평화철학·541
3. 여성은 정령적 존재, 평화적 존재·574
제8장|결론: 철학의 미래와 네오샤머니즘·589
발문| 인류평화의철학 네오샤머니즘-진형준·616
연보| 심중(心中) 박정진(朴正鎭) 연보·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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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서양철학의 한계를 딛고, 한국자생철학을 선도하다
김형효(전 정신문화연구원부원장)
박정진 선생은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한국의 자생철학의 탄생을 위해, 이른바 철학인류학적인 철학서들을 쏟아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저로서는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들이었습니다. 박 선생의 철학이 이제 한민족문화의 심층인 샤머니즘에 이르고, 그곳에서부터 물레를 돌리듯 자아올린 성과가 이번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에서부터 민족문화적인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생명과 평화의 철학—네오샤머니즘』은 특이하게도 제가 유럽에서 유학하고 국내에 돌아와서 처음 쓴 책인 『평화를 위한 철학』의 ‘평화’의 염원을 계승하면서 그 앞에 ‘생명’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네오샤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을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는 생명사상이 앞에서 끌어주면서 동반성장하지 않으면 달성될 수 없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하이데거나 데리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현재 세계를 이끌고 있는 서양철학과 문명의 한계나 모순, 그리고 마치 인류의 구원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고 있는 과학기술문명의 문제점과 그것에 내재한 ‘도구적 인간’의 종말적 상황을 지적하는 그의 설명을 들을 때면 그의 혜안에 때로는 놀라움에 젖기도 합니다. 선배 철학도로서 활발한 토론을 해주지 못하는 저의 입장이 못내 아쉽습니다.
저는 여러 번 박 선생의 저술에 「추천사」를 썼습니다. 이번 책은 그간 박 선생의 철학의 요체를 충분히 모아서 드러낸 것 같은 중량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현대문명을 이끌고 있는 서양철학에다 대고 우리도 ‘오리지널 철학’이 있다고 소리치는 함성을 듣게 됩니다. 한국자생철학의 선도가 되어준 그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지난 4, 5년 동안 줄기차게 저의 집에서 ‘심원철학방’을 함께 운영하면서 제자 및 철학동호인과 활발한 발표와 토론을 해준 박 선생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18년 2월 16일 설날아침에
심원(心遠) 김형효(金炯孝)
추천사
박정진의 철학, 인류 미래의 철학이 될 것
공종원(전 조선일보,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찍이 한국의 자생철학을 염원해온 열암(洌巖) 박종홍(朴鍾鴻, 1903~1976) 선생은 서울대에서 ‘한국철학사’ 강의를 처음으로 개설하여 우리 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창 실존철학 등 서양철학이 풍미하던 시대에 남의 철학이 아닌 우리의 독자적인 철학을 내세운 의도자체가 신선했을뿐더러 우리 역사전통 속에 성장해온 한국의 철학사상에 대한 긍지가 느껴져 학생들과 이 땅의 철학도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열암이 막연한 민족주의적 의욕을 내세운 학문연구가 아니라 동·서 철학을 두로 섭렵하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철학을 이뤄내야 한다는 계획을 꾸준히 추진하였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열암은 그의 철학의 논리적 근거로서 ‘일반논리학’ ‘인식논리학’을 거쳐 ‘변증법논리학’과 ‘역의 논리’라는 논리체계 완성에 진력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사변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문제들을 극복하면서 절실한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창조적 지성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종홍이 비록 그의 철학체계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리는 후학들이 모여 만든 열암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의 이름도 『현실과 창조』였다.
철학자 박동환(연세대 명예교수)은 철학의 방향성(orientation)을 잃은 서양철학을 극복하고,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밖에서 제3의 철학을 해야 한다는 의미맥락에서 삼표론(三表論)을 제안했다. 삼표론의 내용은 “동서의 바깥에 해당하는 잉여지대의 사상의 가능성을 하나의 평면에 구성하는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한국의 자생철학의 완성이라는 것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서철학을 뛰어넘을 때에 가능한 일임을 상기케 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내놓은 박정진의 철학역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그 사이에 있는 철학적 현안들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서양철학을 ‘현상학’이라는 카테고리로 규정하고, 동양철학을 ‘도학’이라고 규정한 점이다. 그는 나아가 도학을 ‘존재론’과 연결시키는 동서소통작업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철학적 평면작업은 주로 하이데거와 데리다를 비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그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마르크스 등 서양 철학사 전반과 결투를 벌이고 있다.
다른 한편 박정진은 동양철학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원시유교철학과 노장철학과 불교철학, 그리고 주자학 등을 아울러 토론의 중심에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철학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의 밖에서 사유하는, 이른바 철학인류학적 태도를 보이면서 앎의 체계인 철학과 삶의 체계인 인류학의 사이(틈새)를 오가면서 철학의 원시반본을 시도한다. 이러한 철학적 원시반본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극복하면서 ‘존재론의 미래로서의 네오샤머니즘’을 주장하는 데에 이른다. 인류학자적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철학하는 모습이 약여하다.
참으로 그의 철학적 여정은 놀랍기만 하다. 특히 서양 현상학의 딜레마를 논할 때는 그의 철학적 위치가 새로운 경지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서양 철학사 전체를 현상학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돌하기 그지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양철학은 확실하지 않는 세계와 사물을 마치 확실한 것처럼 이분법(이원대립)으로 나누고, 그것에서 말미암은 동일성을 토대로 끝없이(무한대로) 어떤 이상과 욕망을 변증법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맹목성을 연출한 하나의 드라마와 같다. 확실성(동일성)의 주변에는 항상 틈(공집합)이 있기 마련이고, 그 틈은 항상 다른 동일성으로 향하는 ‘비어 있는 중심’과 같다. 그 비어 있음이 동양의 도(道)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철학은 ‘동양의 도(道)’의 한 노정에 불과하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지 않고, 사방으로 통하는 다른 길의 길목일 뿐이다. 그 도(道)는 바로 연기(緣起, 네트워크)의 다른 말이다. 서양철학은 ‘동일성의 노예’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차이성’조차도 ‘동일성(실체)의 차이성’이다.”
물론 서양 철학적 전통의 가장 큰 수확은 과학일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는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서양철학이 자신의 장남인 과학에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것은 마치 권력을 잃은 늙은 아버지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철학의 보편성과 초월성과 투쟁성과 패권경쟁은 오늘날 지구환경의 황폐화와 문명의 종말적 상황에 처한 나머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박정진이 지난 5, 6년간 내놓은 철학이 인류의 미래의 철학으로 자리를 잡을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박정진의 철학은 일반성의 철학, 소리의 철학, 여성의 철학, 평화의 철학, 생태철학 등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들은 그의 철학의 다양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종의 교향악의 변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이 책의 제목이 된 ‘네오샤머니즘’철학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달(月)과 샤머니즘은 예부터 깊은 관계에 있다. 달은 생명을 은유하고 있고, 샤머니즘도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생명과 평화의 철학—네오샤머니즘』은 과학기술시대를 뛰어넘어서 원시고대의 샤머니즘을 새롭게 부활시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네오샤머니즘은 신체적 존재론(신체존재론)과 심정적 존재론(심정존재론)의 지평위에 새롭게 쌓아올린 천지인사상의 철학적 건축물이다.
그는 서양철학의 존재론과 현상학의 화해의 산물로 신체적 존재론을 창안하고 있다. 신체적 존재론은 프랑스의 신체적 현상학과 독일의 존재론을 융합한 제3의 철학이다. 동서철학을 뛰어넘은 그의 철학은 바로 이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러한 뿌리내림은 동양의 불교와 노장철학의 풍요한 지반(地盤)에 도움을 받고 있다. 그의 철학적 행보는 아마도 한국철학의 미래와 관련되는 모종의 큰 사건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철학적 노작(勞作)에 축하와 함께 영광을 빌어본다.
2018년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에
숭봉(崇峰) 공종원(孔鍾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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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적 철학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심지어 인류문화의 원형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듦으로써 과거에 대한 회상과 반성을 통해 새로운 미래문명을 만들어내는 견인차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_28쪽
현상학은 어쩌면 자연의 실재(존재)에 대해 가상실재(실체)를 세우고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원인과 결과 등 모든 이분법은 그 좋은 예이다. 기독교의 ‘최초의 원인(천지창조)’과 ‘최후의 종말(종말심판)’의 프레임도 현상학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왜 자연존재로부터 주체-대상(절대-상대)이라는 현상학적 궤도를 만들고, 그 타원궤도를 돌아갔던 것인가. 그 궤도에는 인간이 찍어놓은 환원과 회귀의 수많은 점들의 흔적과 발자취가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의식과 인식의 기억들이다._37쪽
인류의 평화는 자식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달성된다. 만약 자식의 입장에만 있으면 ‘인류역사는 형제들의 투쟁의 역사’라는 장벽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효(孝)는 충(忠)과 더불어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가정의 평화가 없으면 인류의 평화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류는 일종의 가정주의로 복귀하지 않으면 평화를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그런데 그 가정주의는 족벌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가족주의로 새롭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는 가정주의와 세계 일 가정 신의 역동적 왕래라고 할 수 있다._61쪽
서양철학의 관념론은 결국 ‘정신=물질’을 도출했으며 다른 한 줄기인 경험론은 과학기술주의(논리철학, 분석철학)를 도출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물신숭배(物神崇拜)에 있다. 자유자본주의든 공산사회주의든 물신숭배에 빠져 있다. 서양철학의 ‘신-정신-물질(유신론-유심론-유물론)’은 정확하게 서양문명의 ‘종교-철학-과학’과 대칭을 이루는데 서양철학이 중심이 된 물신숭배와 현대과학기술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대립관계에 있는 동양의 자연주의 혹은 도학(道學)의 회복이 절실하다. 그 자연주의 철학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샤머니즘(shamanism)인 것이다._97쪽
선과 악이 어디에 있는가. 인간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이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유령 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그 허상을 실체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유물론과 무신론은 인류의 ‘마지막 이념(last ideology)’이라는 점에서 가장 치열한 이념투쟁을 하고 있다._137쪽
서양 철학자들이 스스로 동양철학에서의 구원을 찾았음(표절하거나 약간의 변조를 행함)을 고백하지 않고 있긴 않지만, 철학사의 어려 징후들은 이러한 정황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고 또 일부 발견할 수도 있다. 동양의 많은 철학자와 서구유학철학자들은 아직도 이 사실을 발견할 정도로 철학에 예민하거나 투철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사실이 폭로될 날이 올 것이다.
존재는 진리도 아니며 선악의 구분도 없으며 아름다움(美醜를 함께 포함한 아름다움)과 생명일 뿐이다. 따라서 인류의 새로운 구원은 예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서양철학들이 동양에 그렇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그들이 구원에 도달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도 그들의 ‘실체론적 전통’과 ‘힘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_199~200쪽
존재와 사물 그 자체는 인간이 잡을 수 없는 자연(우주)의 생멸과정이다.
인간은 자연의 생성과정의 한 단락에서 자신이 잡을(소유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우주를 설명하고 측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우주를 깨달았다는 자체도 실은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적인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날아가는 새를 잡았다고 하거나 흘러가는 강물을 잡았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생멸하는 존재가 잡은(깨달은) 것이 고정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존재는 진리가 아니다. ‘존재 적 진리’라는 말은 인간의 무지의 소치이다._213~214쪽
네오샤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샤먼은 만물만신(萬物萬神)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의 상징성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초월적인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연과 하나가 된 접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샤먼들은 서양문명의 ‘신-이성’ ‘정신(주체)-물질(대상)’의 이분법을 초월하고 극복하면서 ‘모든 존재는 하나됨’을 표방하는 사람이다. 이때의 ‘하나됨’은 초월적인 의미의 ‘하나’가 아니라 존재일반으로서의 ‘하나됨’이다. 다시 말하면 서양의 형이상학적 의미의 ‘하나’가 아니라 동양철학의 도학적(道學的) 의미의 ‘하나됨’이다._405쪽
한국에서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외래종교가 크게 발전을 이루는 까닭은 관대함이나 포용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철학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의 포용력은 ‘신들의 평화’를 지향하는 샤머니즘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철학적으로 보면 ‘무(無) 철학’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샤머니즘과 무(無) 철학은 동시적이면서도 서로 통하는 것이다. 샤머니즘과 ‘무’철학의 특징을 잘 융합하면 ‘신들의 전쟁’의 문화를 ‘신들의 평화’로 바꾸면서 한국문화를 세계사를 이끌어가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의 샤머니즘적 기반은 어떤 종교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힘이 되면서도 동시에 맹목적 기복신앙의 요소는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_484~485쪽
한국문화의 심층구조라고 할 수 있는 ‘샤머니즘’과 ‘한의 정서’는 서로 피드백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문화의 여성성과 만난다. 한국문화에는 전반적으로 모계사회의 속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는 시집간 여성이 자신의 성씨(姓氏)를 지키고 있는 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여성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서구에서 결혼한 여성은 반드시 남편의 것으로 성씨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에 소속되는(belong to man) 것이다.
한국의 민속음악과 민속문화가 ‘당골(무당)’ 가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도 한국문화의 특성을 비교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샤머니즘밖에 없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한국문화의 심층문화, 기층문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문화층위적으로 불교와 성리학과 기독교가 위에서 억압을 하고 있어도 샤머니즘은 여전히 한국문화의 심층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_503쪽
결국 신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모두 가상실재이다. 그렇게 보면 정신도 육체도 가상실재이다. 신체는 자연의 생멸하는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체적 존재론은 자연적 존재론이다. 존재의 관념성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육체(물질)라고 하는 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육체란 정신-물질의 현상학적 세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나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학적 왕래(이중성)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 존재론은 칸트가 남겨둔 ‘신(神)’이나 ‘물자체’의 세계를 현상학이 아닌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_572~573쪽
모자를 있게 한 아버지는 모자를 권력으로 지배한 ‘납치범의 폭군’인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생성(生成)의 신’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존재(存在)의 신’이 횡포를 부렸다. 우리가 ‘존재’라고 하는 것은 ‘생성’을 죽인 흔적(텍스트에 불과하다. ‘아버지(father)’라고 불리는 신, 정신, 유령이라는 것은 모두 ‘어머니(mother)’를 강간한 여신폐위(女神廢位)의 찬탈자인지 모른다. 겉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욕뿐이다. 절대(실체)라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절대(권력)라는 것은 죽음으로서 그 허망한 본색을 드러낼 뿐이다. 진정한 생성의 신은 여신(女神)이다.
아! 샤머니즘의 철학은 ‘바람(風流)의 철학’일 수밖에 없고 ‘목소리의 철학’일 수밖에 없다. 옛 인류의 조상들은 바람의 철학, 목소리의 철학의 신봉자였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과학기술로 무장된 지식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의 리듬, 사계절의 순환을 시간으로 느끼면서 자연을 시공간으로 쪼개지 않았다. 자연은 해체할 수 없는 자연이었다. 그들은 자연을 전체로서(to be whole) 은유할 줄 아는 시인들이었다._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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