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요셉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열 한번째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의 시기를 받는다.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훗날 이 나라 재상이 돼 야곱 일가와 다시 만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다.
여기까지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과 요셉'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다. 구약성서 창세기 27∼50장에 서술돼 있는 이 얘기는 괴테의 말에 의하면 '너무 짧다'. 괴테는 너무나 아름다운 요셉 이야기가 너무 짧아 상세하게 묘사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괴테는 끝내 그 사명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4월 10일 우연히 요셉의 얘기와 그림을 접하게 된 토마스 만(1875∼1955. 노벨문학상 수상자<1929년>)은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예감으로 깊은 사색에 잠긴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어떤 목적을 지닌 존재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고뇌와 괴테 발언에 자극 받은 토마스 만은 일생일대의 최대 역작을 집필하며 괴테의 사명감을 대신 이어나갔다.
'야곱 이야기' '청년 요셉' '이집트에서의 요셉' '먹여 살리는 자, 요셉' 등 모두 4부작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은 토마스 만이 무려 16년간 집필에 몰두하며 쓴 고뇌와 정성이 결집된 작품이다. 1926년부터 시작된 집필기간은 독일 나치 정권의 집권과 2차세계대전, 작가 자신의 스위스 및 미국 망명생활이 가로놓인 시기였다.
'요셉과 그 형제들' 제1권 '야곱 이야기'가 출판된 1933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해다. 당시 히틀러가 건설한 제3국은 게르만 신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신화의 구원시대로 인식됐다. 토마스 만은 파시스트들의 신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합리적인 도취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나치에 의해 왜곡된 신화는 휴머니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을 바꿔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성인들의 지원까지 받고 있는 파시즘의 손아귀로부터 신화를 빼앗아 내어 그 개념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1941년 9월7일 캘리포니아에서 칼 케레니에게 보낸 토마스 만의 편지 중에서).
토마스 만의 '신화론'에 의하면 신화는 독자적으로 자생하거나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흐르면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 것이다. 고대인들은 특히 신화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를 모델로 삼아 독사를 올려놓고 죽은 클레오파트라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그는 소개하고 있다.
요셉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탐무즈나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로 이어지는 신화속 인물들을 동일시했는데 이들 모두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사상을 그 근간으로 삼고 있다.
토마스 만이 요셉을 통해 진정으로 구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사명이었다. 나치즘을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의 죽음'인지를 체험했고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성경속 인물을 신화의 재현으로 허구화했다손 치더라도 나치에 저항한 '시대적 의미'로, 인류의 보편적 이야기로 승화시킨 '휴머니즘의 극치'로 토마스 만은 인간을 역사의 중심에 서 있게 했다.
'단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의와 이성에 반하여 그 권력을 남용하는 사나이야말로 사람을 웃기거든요. 만약 그 자가 오늘은 아직 웃음거리가 안 되고 있다 할지라도 미래에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미래의 편에 서서 나아갑시다'(본문중에서). ---세계일보 김고금평기자 2001년 11월 30일
"깊은 과거의 우물로. 우물은 우물이되 너무 깊어서 바닥을 모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과거를 주절거리고 그런 걸로 골치를 썩는 존재가 인간 외에 어디 있겠나"
토마스 만(1875∼1955)이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칭한 '요셉과 그 형제들'(전7권·살림)의 첫 대목은 이렇게 우물에서 시작된다. 우물에는 하늘의 달이 뜬다. 이는 주인공 요셉이 하늘과 땅,즉 위와 아래에서 축복받은 인간임을 상징한다.
국내 처음으로 완역된 이 소설은 토마스 만이 구약성서 창세기 49장 25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그러나 요셉은 하늘과 땅의 축복을 받아 장밋빛 삶을 살다가 갔을까. 천만에! 그것은 고난에 찬 가시밭길이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우물에 내던져졌고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였다. 그러나 요셉에게 선지자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 이집트 왕 '파라오'의 부름을 받고 오늘날의 장관(혹은 총리)에 해당하는 직무를 맡아보던 중 지독한 가뭄이 들어 사방에 굶주린 자들이 들끓었다. 그러나 가뭄이 올줄 알고 미리 곡식을 저장해둔 요셉 덕분에 이들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 무리 속엔 자신을 팔아치운 아버지와 형제들도 있었다.
토마스 만은 신의 축복을 받은 야곱이 인간의 세상에 이 축복을 어떻게 환원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기본틀은 구약성경 창세기 27장에서 50장까지의 짧은 이야기다. 하지만 토마스 만은 '창세기'라는 뼈대에 '고대 오리엔트의 유대 전설과 바빌론·이집트 신화'라는 피와 살을 붙였다.
천지창조, 신들의 전쟁,인류의 기원, 홍수 이야기 등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록 다르지만 각각이 포함하는 요소는 거의 엇비슷한 기원신화들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소설은 아눕, 마르둑, 길가메시, 타무즈, 두무지 등 신화 속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신화는 흔히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하나의 경건한 고정틀로서의 신화를 통해 토마스 만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인류의 기원에 접근해간다.
소설은 1926년 12월∼1943년 1월까지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씌어졌다. 토마스 만은 이 기간동안 독일 나치정권의 집권과 제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스위스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나치즘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무엇이 '인간의 죽음'인지를 체험했다.
파시즘에서 죽음을 보았기에 반드시 '부활'이 필요했다. 토마스 만은 파시스트들의 신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비합리적인 도취라고 비판하며 파시즘적 신화를 휴머니즘적 신화로 바꿔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사로잡혔다. 그 소명의식이 '요셉과 그 형제들'을 쓰게 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을 파헤치는 이 이야기는, 그들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사명을 설명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소설을 쓴 직후 "70세라는 나이가 이 소설을 가능케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인간, 혹은 인류의 기원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된 것이 성서와 신화였다는 것.
소설의 안내서인 '깊이읽기'를 함께 펴낸 역자 장지연씨(43)는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젊은 층이 읽으면 인생의 방황이 쉽게 다잡히게 될 소설"이라며 "요셉이 한국의 색동옷을 입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정철훈 기자 2001년 12월 1일
토마스 만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일컬었던 <요셉과 그 형제들> 4부작은 구약성서 창세기 27장에서 50장까지가 기본 줄거리를 이룬다. 정신적 공황에 빠져버린 유럽의 위기를 내적으로 진단한 <마의 산>을 끝낸 작가가 다시 13년 동안 꼬박 매달린 필생의 역작이다. 그 사이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으며, 작가는 요셉처럼 망명지를 떠돌았다. 그러면서 작가는 유대 전설에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신화까지도 녹여낸 '인류 서사문학의 한 극점'을 탄생시켰다.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작가는 거짓 신화와 광기로 얼룩진 파시즘 시대에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거침없는 광대한 상상력과 숨막힐 듯 농밀한 묘사, 그리고 유쾌한 해학과 섬세한 심리적 분석이 어우러진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어두운 시대를 뛰어넘었다. 이토록 방대한 소설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서까지 펴낸 역자의 노력과 정성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한겨레신문 석균(출판사 청년사 주간) ( 2002-08-10 )
대표적인 예술가 성장소설인 <마의 산>을 쓴 토마스만의 장편 <요셉과 그 형제들>(살림 출판사)이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어 6권의 책으로 나왔다.
모두 4권인 원작의 모티프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1926∼36년,40∼43년 두 차례 13년 동안 쓴 작품으로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다. 토마스 만은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한 가문의 몰락'이 독일 소설,50대에 쓴 '마의 산'이 유럽소설이라면 70대에 쓴 '요셉과 그 형제들'은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인간을 그린 노래"라고 자부심을 가질 만큼 보편적 세계를 담고 있다. 그 힘은 작가의 연륜과 신화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한다.
신화는 서구문학의 영감의 원천이다. 토마스 만의 특이한점은 신화를 상대화하는 데 있다. 즉 신화의 원형질은 동서고금을 통털어 같다고 보고 그 내용을 옮기는 주인공과 형태가 시공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나라의 신화를 섭렵한 뒤 탁월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요셉을 소설 주인공으로 되살린다.
1권 '야곱 이야기'는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나와 "요셉을 만나려면 그가 살고 있는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야한다"고 말한다. 과거라는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 역사를 훑는 여행을 제의하는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용모와 현명함까지 갖춘 요셉이지만 타고난 교만함 때문에 형제들의 미움을 사 우물에 갇힌 뒤('청년 요셉'),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이집트에서의 요셉 상·하') 등 시련을 거쳐 그리던 가족을 만나는 것('먹여살리는 자 요셉 상·하')을 다루고 있다. ---대한매일 이종수 기자 ( 2001-12-07 )
토마스 만이 말년의 열정을 쏟아부어 쓴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살림·전7권)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역되어 나왔다.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평한 작품. '구약성경' 창세기 27장부터 50장까지의 짧은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만든 이 작품을 쓰는 데 토마스 만은 13년이란 긴 세월을 투자했다.
특히 집필기간 동안 나치정권의 집권, 제2차 세계대전, 스위스와 미국으로의 망명 등 험난한 생활을 겪으며 완성한 작품인지라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가장 애지중지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청년기의 작품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한 가문의 몰락'과 50대에 쓴 '마의 산', 70대에 들어서 완성한 '요셉과 그 형제들'을 두고 각각 독일 소설, 유럽 소설, 신화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의 노래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게르만 신화'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히틀러를 비롯한 파시스트들이 신화를 악용하려고 하자 토마스 만은 "파시즘으로부터 신화를 빼앗아, 신화가 휴머니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요셉과 그 형제들'이다.
이 소설은 요셉의 이야기가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다. 노아의 홍수를 그리면서도 그는 여러 지역의 홍수신화를 모두 등장시킨다. 그는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곤드와나와 아틀란티스 대륙의 이야기도 홍수신화의 하나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화라는 것은 반복·순환한다고 말한다.
토마스 만은 '신화를 가지고 노는 익살꾼'으로서 요셉을 그린다. 요셉은 자신이 살았던 바빌론과 이집트 지역의 신화 속 인물들-그리스의 미소년 아도니스, 바빌론 신화의 탐무즈, 길가메쉬 등-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긴다. 요셉과 신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넘어 부활하는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요셉은 또한 예수의 전형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윤성노 기자 ( 2001-12-01 )
작가(1875~1955) 스스로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꼽은 소설이다. 순수 집필시기 13년, 준비기간까지 총 16년이 소요된 이 방대한 작품은 이번이 국내 초역이다. 총 4부작으로 완성된 이 소설은 신화를 재료로 삼아 인간 기원에 대한 탐구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천착해본 역작이다.
형식상으로는 구약성경 창세기 27장에서 50장까지의 짧은 이야기가 기초가 돼 있다. 그러나 작가는 기독교 전통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와 길가메쉬 신화,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성서의 요셉 이야기, 그리스-로마의 아도니스와 디오니소스 신화까지를 두루 용해시키고 있다. 특히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했으며 여기에 그의 상상력과 해학을 가미했다.
첫째 『야곱 이야기』(제1권)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은 어디에 젖줄을 대고 있는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들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무엇이었을까. 신의 축복을 거머쥔 야곱이 그 축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행한 행동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둘째 『청년 요셉』(제2권)에서는 야곱과 라헬 사이에서 태어난 요셉, 그가 받는 사랑과 미움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용모에 현명함까지 갖춘 청년이었으나 겸손함을 모르는 결점이 있었으니…. 얼마나 미움을 샀으면 형제들 손에 의해 우물에 빠지고 말았을까.
셋째 『이집트에서의 요셉』(제3,4권)에서는 타락의 도시 이집트로 내려간 요셉이 포티파르에게 팔려 노예가 된다. 야곱의 유일한 어린 양으로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이 노예라니, 그들의 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넷째 『먹여살리는 자, 요셉』(제5,6권)에서는 요셉이 높이 출세하고 꿈에 그리던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요셉은 자신을 팔아 치운 형제들을 용서하고, 이제 노인이 된 야곱은 아들 요셉의 품에서 눈을 감는다. 열 두 아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아울러, 3년 간에 걸쳐 "내 안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나와 싸우는 몸부림"(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끝에 대작을 번역해낸 역자(43)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연과 도움말이 제7권 『요셉과 그 형제들 깊이읽기』(10000원)에 들어 있다. --- 조선일보 책마을 김광일 기자 (2001년 12월 1일 토요일)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씨는 최근 출간된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실린 단편 '전설과 진실'에서 박정만 시인 죽음의 전설과 진실을 다루고 있다.
자신이 쓰지도 않은 필화사건에 어처구니없이 연루돼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88년 숨진 박시인을 일부 젊은이들이 전설적인 민주 투사로 받들어 모시는, 이념 과잉 시대의 그 '왜곡된 진실'이 박시인을 더욱 더 치욕적인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지성인이 앞장서고 있는 파시즘으로부터 신화를 빼앗아 휴머니즘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독일의 토마스 만(1875~1955) 이 이런 각오로 구상과 집필에 16년을 쏟아부은 4부작 장편 『요셉과 그 형제들』 이 국내 최초로 완역, 소개됐다.1부작 '야곱 이야기'가 출간된 33년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해로, 당시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는 세계를 제패, 구원할 메시아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왜곡된 신화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집단적인 도취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 소설로 나치즘에 맞선 만은 독일에서 추방당했다.
이 소설은 구약성경 속의 요셉과 그 형제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토대로 인간과 신, 신화와 역사의 본질을 참으로 인간적으로 자유롭게 사색하며 묻고 있는 작품이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아 가문의 후계자로 떠오르던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 노예로 팔려 이집트에 간다.
고관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요셉은 우여곡절 끝에 파라오의 은총을 입어 재상이 된다.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이 온다는 예언을 믿은 요셉은 풍년 때 비축해둔 곡식을 풀어 이집트뿐 아니라 주변 나라도 먹여 살린다. 흉년에 곡식을 얻으러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온 아버지와 형제들을 용서하고 먹여살리며 야곱이 그 아들 모두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것이 성서 속의 요셉 이야기 대강이다.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은 이 성서적 사실의 뼈대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수많은 신화. 민속. 종교와 심리학에 대한 심오한 지식으로 이야기를 변주하며 생생하게 오늘에도 살아있는 살을 붙여가며, 특히 문학적 상상력과 구성. 문체로 인간과 삶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해가게 만든다.
"이야기 축제! 그것은 생명의 신비가 걸치는 예복이 아니던가! 그대야말로 사람들에게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 신화를 불러내어, 그들의 눈앞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해주지 않는가 ! 죽음의 축제, 저승 나들이, 그대는 진정 하나의 축제며, 육신에 갇힌 영혼에게 기막힌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중에서 이렇게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초청하고 있는 만은 다시 덧붙인다."축제는 해마다 반복되면서 시간의 그물을 잡아당겨 과거에 있었던 일과 앞으로 생길 일을,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의 일로 느끼게 만든다."
해는 저물고 있는데 세상이 너무 핑핑 돌아 방향 감각을 잃은 자, 도대체 왜 지역. 이념. 정파별로 나뉘어 죽자 사자 싸우는지 모르겠다는 독자 여러분께 인류와 세상의 본질을 알기 위해, 무엇보다 신성(神性) 에 이르는 인간으로서의 자존(自存) 을 위해 좀 무거운 작품이지만 찬찬한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이경철 기자 (2001년 12월 1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