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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 (현대신학자 평전 12)
장동민 지음 | 2006년 10월 30일
브랜드 : 살림기독교
쪽수 : 280 쪽
가격 : 10,000 원
책크기 : 사륙판
ISBN : 89-522-05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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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분열의 주인공임과 동시에 ‘자유주의’로부터 한국 교회를 구한 한국 보수주의의 수호자 박형룡! 그를 빼놓고 한국 교회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그림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직도 한국 교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자유주의’를 몰아내고 정통신앙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장로회신학교, 총회신학교 등을 세웠으며, 장로교의 주요 분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저술하였던 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5



1. 박형룡의 교육적 배경(1897-1927) 16



새로운 유학운동|사회진화론과 기독교|박형룡에게 미친 유교의 영향|벽동읍교회와 회심|신학문 초등교육(1907-12)|신성중학교(1913-16)|숭실전문(1916-20)|3․1운동(1919)과목포 설화사건(1920)|난징금릉대학(1921-23)|프린스턴신학교(1923-26)|1920년대 프린스턴의 변증학|성경과 과학의 관계: 진화론|성경비평에 대한 프린스턴 신학자들의 태도|메첸과의 교제|남침례 신학교(1926-27)



2. 한국 교회 신앙의 확립자(1927-38) 96



귀국 후의 행적|신학의 정초기(定礎期)|변증학자 박형룡|변증학 방법론: 학위논문을 중심으로|박형룡은 근본주의자인가|타종교에 관한 견해|1920~30년대의 해석 문제와 ꡔ근대기독교신학난제선평ꡕ|ꡔ근대기독교신학난제선평ꡕ의 의의|1930년대 한국 장로교회와 ‘자유주의’|‘자유주의’ 논쟁과 박형룡|1930년대 한국의 ‘자유주의’|김재준과 박형룡의 성경관 비교



3. 한국 교회 신앙의 수호자 1(1938-51): 신사참배 152



평양에서의 신사참배 반대|일본 망명 생활|만주신학원|신사참배 자숙안(自肅案)|선천의 신사참배 통회자복 금식기도 수양대회|박형룡의 ‘점진적인 개혁’|신사참배 반대의 신학적 이유



4. 한국 교회 신앙의 수호자 2(1951-78): ‘자유주의’와의 투쟁 182



한국 장로교회의 첫 번째 분열(1952)과 신사참배 회개 문제|한국 장로교회의 두 번째 분열(1953)과 신학적 ‘자유주의’의 문제|한국 장로교회의 세 번째 분열(1959)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참여 문제|신복음주의 문제와 비주류 분열|박형룡 소천



맺음말 255



신앙의 확립자, 신앙의 수호자 박형룡|‘영미 청교도 개혁신학’ 해석|박형룡 신학의 유산|박형룡 신학의 과제와 가능성





∙박형룡 연보 278
한국 교회 분열의 주인공임과 동시에 ‘자유주의’로부터 한국 교회를 구한 한국 보수주의의 수호자 박형룡!





박형룡을 빼놓고 한국 교회의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그림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직도 한국 교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신학적 영향력에서, 정통 신학을 사랑하는 그의 열심에서, 장로교회에 남긴 유산에서 그렇다. 박형룡이 한국 교회를 위하여 행한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애국주의와 신비주의로부터 정통 기독교를 확립한 것이요, 둘째는 근대주의와 신학적 자유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정통 기독교를 수호한 것이다.





박형룡은 전통 종교 영성이나 신비주의와 차별화된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 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박형룡은 1935년에 ꡔ근대기독교신학난제선평ꡕ을 저술했다. 이 책을 통해 박형룡은 성경과 전통적인 기독교에 기초하지 않은 현대주의나 애국적인 활동, 신비주의 운동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천명했다. 그는 전통적 개혁주의의 입장에 따라, 성경이 기독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이후 박형룡은 이단과 ‘자유주의’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미국 유학길에서 ꡔ학지광ꡕ이라는 잡지에 실린 기독교 비판에 관한 글을 읽고 자극과 도전을 받아 미국에서 4년 동안 변증학을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형룡은 1930년대에 강의와 저술, 총회 활동을 통해 ‘자유주의’에 대항해 싸웠다. 193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논쟁들을 통해 그는 정통 신학의 대부(代父)로서 선교사들과 한국의 목회자들 앞에 우뚝 서게 되었다. 해방 후 몇 번에 걸친 교회 분열마다 박형룡은 깊이 개입되었다. 박형룡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결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었다고 믿었다. 박형룡은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대결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형룡에 대한 평가는 그를 지지하는 자들과 반대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맹목적인 추앙이나 비난뿐이었다. 한국 교회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도 박형룡의 평가는 필수적인데, 이러한 시점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그의 삶과 신학을 논한 『박형룡』의 출간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하여 ‘자유주의’를 몰아내고 정통신앙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장로회신학교, 총회신학교 등을 세웠으며, 장로교의 주요 분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저술하였던 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박형룡 박사는 한국 신학계의 거대한 산이다. 신학적 영향력에서, 정통 신학을 사랑하는 그의 열심에서, 장로교회에 남긴 유산에서 그렇다. 한국의 장로교회와 복음주의적 교단의 목회자들은 박형룡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던 초기 한국 교회에 진정한 복음과 기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와 기독교적 애국운동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기독교와 전통 종교의 영성이 어떻게 다른지, 기독교와 현대주의는 어떤 공통성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박형룡이 분명히 구분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