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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앤조이>에서는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책 <예수>를 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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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앤조이>에서는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예수>(The Original Jesus)(살림)라는 책을 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톰 라이트(N. T. Wright)가 쓴 <예수>는 1996년 영국 BBC에서 ‘첫 등불(First Light)’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일부 보완해서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 예수는 누구였으며 그의 메시지와 삶은 무엇이었는지를 역사적 상황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밝히고 있다. 저자인 톰 라이트는 제3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는 신약학자이자 영국 성공회의 더럼(Durham)의 주교다.
좌담에는 손은정 목사(성문밖교회), 윤선주 목사(디딤돌교회), 정정훈 연구원(연구공간수유+너머), 정모세 목사(출판사 대성닷컴 편집인)가 참석했다. 진행은 이광하 <뉴스앤조이> 편집장이 맡았다.
저자는 “예수의 이야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큰 뉴스거리이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관심을 갖는 예수의 모습은 복음서의 예수와는 다른 예수가 아닌가. <다빈치 코드>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 많은 관심을 갖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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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톰 라이트 지음/ 살림 펴냄/ 177쪽/ 1만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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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선주 / 다른 예수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기보다는 제도적인 종교로서 기독교가 이야기해온 예수, 신학화되고 정형화된 예수상에 대한 식상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복음서가 이야기하는 '예수'의 모습과는 분명 거리가 있지만, 이러한 문화 현상 가운데에는 종교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예수에 대한 질문과 문제제기가 들어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이를 비난하고 거절하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예수’는 논란의 대상이며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은정 / 기독교는 메이저 종교다. 도올도 기독교를 향해 황제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한국 역사와 세계사에서 기독교는 제국주의적 침략의 방편과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 거기에 대한 반작용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도 정치적인 세력이 조작한 속임수에 당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들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보수 기독교의 <다빈치코드> 상영 금지 입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런 영화들은 ‘내가 믿고 있는 게 정말 맞나’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제 경우, ‘내가 믿고 있는 게 뭔가, 뭘 믿고 있나. 할머니·어머니의 신앙을 믿은 것 아닌가’ 하고 회의적인 질문을 수차례 해보았다. 이런 질문 자체가 금기시될 이유가 없다. 내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한 질문을 통해 신앙이 성장하는 것 같다.
정모세 /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개봉된다고 할 때 많은 기독교연합단체에서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그에 비해 단체가 염려했던 신앙이 훼손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흥행에 얼마나 성공했나. 센세이션도 일으키지 못했다. 한국 기독교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미 자신이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신앙이 정통이고,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단단한 신앙은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매우 경직되어 있고, 어찌 보면 자기에게 맞는 예수님 이상의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그런 신앙을 원하는 것 같다.
정정훈 / 사실 사람들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예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예수를 정면으로 다루어서 흥행한 것은 내가 알기로, ‘패션오브 크라이스트’가 유일하다. 교회의 단체 관람이 역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멜깁슨 말로는 복음서에 충실했다고 하더라. 영화가 잘 만들었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기도 하지만 성경 속 예수가 오히려 흥행한 것이라고 본다. 예수의 이야기를 가지고 대중매체가 돈을 벌려면 성경에 충실해야 한다.
책 제목이 ‘The Original Jesus’다. 역사적 예수도 있고, 신앙의 그리스도도 있는데, 오리지널 예수라는 제목은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예수는 누구인가?
윤선주 / ‘진정한 예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거친 표현이지만 교회에서 주입하는 예수, 종교의 틀에 갇혀 정형화된 예수상을 깨뜨리고 그 너머에 있는 살아있는 예수의 모습들을 생각해보고, 질문을 던져보는 자체가 소중한 작업이 아니겠는가. 진정 예수를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계이기도 하지만 열려진 가능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을 신앙이라고 본다면 그러한 고민이 우리에게 있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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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정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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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은정 / 역사적 예수를 찾는 작업이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신앙의 예수나 전해져오는 사도의 고백들도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두 개가 통합되어야 한다.
정모세 / 저자는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살펴본다면, 역사적 예수가 신앙의 그리스도와 만난다는 이야기를 한다. 성경의 역사적 상황, 곧 하나님나라를 고대하던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예수를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예수 연구자와 싸우고 있다. 역사적 예수라는 미명 아래 성경의 예수를 미지의 안개로 감싸버리는 흐름과 싸우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서 신앙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싸우고 있다.
정정훈 / 저자의 그런 작업이 설득력이 없지 않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신앙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만나게 하려는 기획은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가령, 라깡은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 A’에 욕망은 닿지 못한다고 말한다. 욕망은 ‘대상 A’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다른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하나에 집착하면, 자꾸 미끄러지고 다른 작업으로 가는 게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듯하다. 2000년 전의 역사적 예수를 요세푸스, 사해문서 등 정황상 근거를 가지고 해석하는 건데 그럴 때 예수의 자리는 텅 비어 있는, 도달하고 싶지만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구가 되지 않을까.
이광하 / 신앙의 그리스도나 역사적 예수나 예수를 소유의 대상으로 축소하려는 위험성이 있겠다.
정정훈 / 근본주의 기독교는 예수를 일방향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것을 신앙의 문제로 몰아간다. 그 부분은 이해를 하겠는데 반발작용으로 성서 텍스트 이상의 것을 통해서 예수를 구성하려는 시도는 옳은가. 그러다가 빠지는 부분이 생기지 않겠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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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하 <뉴스앤조이> 편집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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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하 / 문학평론가 김훈은 ‘뜨거운 상징’으로서의 문학을 말한 적이 있다. 팔봉 선생을 회고하면서 한 말인데, 그분의 인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뜨거운 상징이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예수를 당시 유대교와 헬라 문화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뜨거운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는 유대교의 상징인 옛 성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성전으로서 새 시대를 연다. 예수가 로마나 유대교에 대항하거나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삶 자체가 도발적이고 전복적이었다. 부활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제시한다.
윤선주 / 톰 라이트는 본서에서 인간의 머리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없지만 예수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인가’라는 질문과 논쟁은 접근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7장 하나님의 얼굴). 나는 이 대목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예수 자신은 한번도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선언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정말 ‘뜨거운 상징’으로 하나님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역사적 실재인 것이다.
손은정 / 책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도 읽고, 스터디를 하면서 읽었던 내용이다. 특별히 새롭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를 역사적인 활동의 무대 한가운데 서 계신 분, 날카롭게 지배 권력을 향해서 독설을 퍼붓고 첨예한 종교적 정치적 대립 한 가운데 계신 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 교인들은 예수님을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있고, 전형적 모델, 스승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예수가 주님이라고 하는 간절한 고백이 약하다. 어렸을 때는 그런 거 몰라도 뜨거운 맘이 있고 쉼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긴 질문이 생겼다. ‘신앙이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독실할 수 없는가?’ 신앙이 열린 사람은 느슨하고, 독실한 사람은 자기 방어적이고 공격적인데,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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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모세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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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모세 / 톰라이트의 책에서 독특한 것은 역사적 방법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만난다면 어떤 선택 앞에 놓이게 될 거라고 말한다. 예수를 따르든지 떠나든지 결정해야 하는 선택 말이다. 이 책의 1부는 예수님이란 인물에 대해 개략적으로 그림으로써 초청을 하고 있고, 2부는 복음서를 읽어 보고 실제로 너도 선택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자신의 책을 이렇게 구성한 것은 의도적이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한번 그 선택 앞에 진지하게 서보라는 것. 톰라이트가 주장하는 예수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분으로서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정훈 / 손 목사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어떤 책도 보편적인 내용을 담을 수는 없다. 요즘 교회 예배만 드리다가 기독교 관련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지나치게 신격화시켜 삶의 모델로서 추종해야 하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처럼 살면 성공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신교단에서 20년 교회를 다녔는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은 모델이 되고,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나 이랜드 박성수 사장은 모델이 되는데 예수는 왜 구체적인 모델이 될 수 없을까. 그런 점에서 복음주의적,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역사적 예수를 묻는 이 책의 방법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달라스 윌라드는 ‘잊혀진 제자도’라는 책에서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에 거대한 누락이 있다고 한다. 예수를 삶의 모델로 제시하지 않고, 제자도를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 누락이 일어나는 자리는 예수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한국교회가 예수의 모습에서 배제하거나 누락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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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주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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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선주 / 한국교회가 자주 범하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세상과 교회 사이에 견고하고 높은 담을 쌓으면서 하나님이 활동하는 영역을 교회 안으로만 국한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원론적 신앙이요, 폐쇄된 밀실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인이 되어 산다는 것은 예수의 정신을 따르고, 예수처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기보다는 기독교 전통에 충실하고, 교회에 순응하는 착한 교인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땅에 교회와 교인은 차고 넘치는데, 정작 예수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누락’이 아닐 수 없다.
손은정 / 이번에 부활절 연합예배 순서지를 보고 놀랐다. 그동안 연합예배를 한기총과 KNCC가 해왔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평택 문제나 미선이 효순이 등 사안을 가지고 연합예배를 했는데, 이번은 진행과 내용이 바뀌었다. 기본 주제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평화와 환경문제다. 이런 행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크다고 본다. 새로운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거는 생각이 든다. 제자도라고 하는 것도 구체적인 현실에서 삶으로서 고백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런 주제로 모이고 노래하는 것이 좋은 징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광하 / 김홍도 목사는 가난한 삶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책을 읽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예수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아닌가. 오늘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에 사로 잡혀 성공과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예수의 진면목을 못 보고 있거나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의 얼굴을 잃어 버려서 지금의 얼굴이 된 것이 아닌가. 진정한 예수를 찾지 못하면 교회의 모습이 새로워질 수 없다고 본다.
저자는 예수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부활이라고 했다.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손은정 / 부활은 ‘Resurrection’에서 ‘Re’가 의미하는 것처럼 다시 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본다. 사는 게 절망적이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런 신음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형적인 사건이 아닌가. 부활은 나에게 그런 이미지와 영감으로 다가온다. 어제 영등포역에서 공공성 확보를 위한 대책위에서 주관한 음악회가 열렸다. 노숙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이 참여했다. 그때 그들을 향해서 노래를 부르는 분이 ‘평안이 있기를’이란 가사가 반복되는 곡을 불렀다. 스산하기까지 하던 그 자리에 생명의 숨결이 감돌고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부활이 있던 날, 다들 무서워서 도망가고 숨어 있을 때 부활한 예수가 돌아와서 ‘평안이 있기를’ 원하셨다. 2000년 전, 부활 사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정모세 / 톰라이트 자신이 밝힌 대로 부활은 하나님이 구약에서 약속한 것들이 성취된 순간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의 길이 옳았다고 지지해 주는 게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다른 사람을 위해 죽고, 버림받는 길을 끝까지 간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옳다고 확인시켜 주신 그 길이다. 십자가를 지는 삶의 정당성을 확인한 것이 부활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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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훈 연구원. ⓒ뉴스앤조이 신철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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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정훈 / 예수가 꼭 부활을 하셨어야 했을까. 논리의 구조에선 대리 희생으로 끝나면 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육체로 올라가면 되지 않았을까. 원래 성육신하기 전의 상태로 가셔도 좋았을 텐데 왜 나타나셨을까. 요즘 드는 생각은 예수님이 새로운 아담이라고 바울이 얘기했을 때 예수의 육체가 부활한 육체가 아니었을까. 하나님나라가 완성이 되었을 때 우리가 경험할 육체성을 예수가 먼저 성취한 것이 아닐까. 예수가 그 육체성을 가지면서 올라가시고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몸이라고 한다. 그 육체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가 아닐까. 예수가 살아낸 사건을 옳다고 하신 것이 부활의 사건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것을 교회로 연결한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부활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윤선주 / 부활이 기독교를 탄생시키고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케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은 부활이 담고 있는 ‘역사종말적 의미’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종말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성경이 말하는 종말이란 ‘역사의 끝’을 뜻한다기보다는 ‘역사의 완성’, 하나님나라의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부활은 역사종말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부활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요,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움직여지고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임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과도 같은 암울하고 척박한 현실에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이 땅에 실현될 부활을 다시 꿈꾸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다.
이광하 / 이 책의 저자는 “예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고,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 말한다. “당신이 지금도 계속되는 예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중립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부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말하기에는 도발적인 존재라는 말인데, 질문을 던지고 예수를 전하는 책임은 그리스도인의 몫인 것 같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삶의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는 누구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