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나오미 클라인 / 이은진 옮김 / 살림 Biz 펴냄

1980년대 부산은 ‘세계 운동화의 중심’이었다. 한국 기업이 나이키 공장을 운영했다. 1980년대 말 한국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반발하고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 공장은 이전됐다. 1987년에서 1992년 사이에 3만명이 직장을 잃었고, 3년 사이에 신발 생산직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1985년에 리복은 거의 모든 제품을 한국과 대만에서 생산했다. 1995년에는 모든 공장이 한국과 대만에서 철수했고, 리복 주문량의 60%를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만들었다. 공장은 여전히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대만과 한국 기업주들은 지난 시절의 배고픔을 이용해 독특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노조가 개입하고 임금이 올라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노동자들에게 얘기한다. 어제의 피해자는 오늘의 관리자다. 나이키와 리복은 브랜드만 생산한다. 나이키 프로젝트가 있다. 운동화는 아디다스에 맡기고 나이키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및 피트니스 기업’으로 변신해야 했다.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있었다. 첫 번째 선발한 운동선수들을 할리우드 배우 같은 슈퍼스타로 바꾸어 놓는다. 역경을 초월하고 인내하는 스포츠 정신과 가장 완벽한 남성상을 구현한 존재로 각인된다. 두 번째 나이키의 ‘순수한 스포츠’와 그 슈퍼스타가 속한 팀을 규칙에 얽매이는 기존의 스포츠계와 경쟁시킨다. 세 번째 미친 듯이 그를 브랜드로 만든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했다. ‘기업은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생산해야 한다’는 한 가지 개념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나오미 클라인은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5년여에 걸쳐 전 세계의 노동 환경을 직접 뛰어다니면서 꼼꼼히 관찰하고 분석했다. 저자를 일약 세계적인 운동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책의 원제가 ‘노 로고(No Logo).’ 어느덧 출간 10주년이 됐다. 번역 출간한 국가만 28개국이다. 클라인은 2005년 ‘전 세계의 지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노 로고’가 로고가 됐다. ‘노 로고’는 기업이 주도하는 규칙에 맞서 진정한 대안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행동주의 브랜드다. 10년이 지난 지금 로고는 사라졌는가. 세상은 여전히 나이키 경영이다. 공장 문을 닫고, 제품은 하청 업체와 하청 업체의 하청 업체라는 얽히고 설킨 망을 통해 생산하며, 기업이 보유한 모든 자원은 회사의 의도를 완벽하게 투영하는 데 필요한 디자인과 마케팅에 온전히 쏟아 붓는 모델이다. 직접 소유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톰 피터스) ‘공동화(空洞化) 회사’다.

문제는 행정부조차도 ‘공동화’ 모델을 숭배한다는 점이다. 2010년 판 서문에 실린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렇게 깊어졌고, 넓어졌다. 부시 행정부 시절 예산 처장의 말이다. “정부가 하는 일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지요. 제게는 이 개념이 아주 명확하게 서 있습니다.” ‘공동화 회사’를 숭배하고 흉내 내려는 부시 행정부의 투지는 분노를 다루는 방식으로까지 확대됐고, 이런 행동은 전 세계를 자극했다. 실패였다. 상품 문제를 브랜딩 문제로 오인한 것이다. 이 점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몇 주 전에 오바마는 나이키와 애플을 누르고 미국광고주협회가 매년 수여하는 올해의 마케터상을 받았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세계화는 시민을 소비자로 바꿔 놓았다. 기업이 노동과 인권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시민권을 잃었다. 스스로 자신을 통치하는 자치권을 상실했다.

희망은 어디 있는가. 정보의 공유다. 지성적 행동주의다. “공공장소의 식민지화, 안정된 직장의 상실이 가져다 준 밀실 공포증은 경제와 자본으로 이룬 지구촌이 아니라 세계 시민, 세계 권리, 세계 책임을 구현하는 진정한 지구촌 사회를 꿈꿀 수 있을 때에만 떨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출처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006161126481&pt=nv

 

ㆍ오바마에 대해서도 냉소 날리며 불매운동·‘광고 패러디’ 등 촉구

▲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나오미 클라인 | 살림BIZ

스티브 잡스는 예의 편해 보이는, 그러나 잘 연출된 캐주얼 의상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손에는 날씬하고 작은 아이폰4G를 들었다.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미국에서 열린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새벽잠 설쳐가며 인터넷으로 지켜봤다. 아이폰4G가 한국에서 출시될 날만을 기다리는 동시, 손은 이미 신용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애플’은 미국의 가전제품 회사 이름이 아니다. 젊고 세련됐으며, 진취적이며 개방적인 시민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종교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는 베이비갭을 입고 맥클라렌 유모차를 탄다. 청소년들은 코카콜라를 마시며 닌텐도를 한다. 직장인은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 아이폰으로 전화한다. 브랜드가 침입할 수 없는 ‘성역’이었던 대학에는 ‘삼성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섰다. 브랜드가 없으면 삶도 없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은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시위가 벌어진 직후인 2000년 1월 처음 출간됐다. 10년 사이 세상의 모습은 크게 변했지만, 브랜드의 영향력만큼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사이 <쇼크 독트린>으로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클라인은 10주년 맞이 서문을 붙여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다시 출간했다.

나오미 클라인

기업은 무엇을 만들까. ‘상품’이라고 답한다면 이미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제조업체들 대부분이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하고 광고하지 않는다. 대신 제품을 구매하고 거기에 상표를 붙인다.”

그렇다면 상품은 누가 만들까. 제국주의자들이 제3세계 식민지를 착취하던 시대가 지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클라인은 미국과 유럽의 기업 대신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찾았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오지의 경계 삼엄한 공장, 10대 소녀들은 옹기종기 모여 평생 직접 사용하지도 못할 제품을 만든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옷이 오버코트라고 불리는 줄도 몰랐다. 더운 날씨의 이곳 사람들은 오버코트를 입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어떤 고용주들은 하루에 두 번씩 15분간 주어지는 휴식시간 외에는 화장실에도 못 가게 한다. 근무 중 잡담도 안되고, 노조는 언감생심이다. 최근에도 아이폰 하청업체인 중국의 공장에서 투신 자살이 잇달아 일어났다. 물론 잡스는 “우리는 노동착취업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클라인은 버락 오바마에 대해서도 냉소를 보낸다. “하나의 브랜드로서 오바마 백악관은 스타벅스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련되고, 진취적이고, 접근이 용이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느낄 만큼만 호화롭다.” 오바마에게 속은 사람들은 그가 부시 행정부의 핵심 국제정책 중 많은 부분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광고판 해방 전선(Billboard Liberation Front)의 광고파괴자들은 애플 컴퓨터의 ‘다르게 생각하라’ 시리즈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환멸을 생각하라’는 말을 써넣었고, 사과 모양의 애플 로고는 해골로 바꾸었다. | 살림BIZ 제공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많은 행동가들은 실천하기 시작했다. 어떤 ‘광고 파괴자’는 거대 기업의 광고를 패러디해 대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어떤 이들은 정치 시위와 놀이 문화를 결합시켰다. 클라인이 한국 사정을 알았다면 ‘촛불 시위’를 예로 들었을 것 같다. 노동착취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번역은 조금 더 윤문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예를 들어 ‘find oneself in …ing’를 그대로 옮긴 듯한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와 같이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띈다. 이은진 옮김. 3만원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벨기에의 노엘 고딘과 그의 친구들은 ‘파이 던지기’ 활동을 펼친다. 목표는 기업가들이다. 사진 속의 빌 게이츠를 비롯해 종자업체 몬산토의 로버트 샤피로, WTO의 레나토 루지에로 사무총장,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등이 이들이 던진 파이를 맞았다. | 살림BIZ 제공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1006111749145&code=9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