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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철 조각토굴
강대철 지음 | 2022년 4월 8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164 쪽
가격 : 25,000
책크기 : 152*210
ISBN : 978-89-522-4398-0-0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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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 바로 그 자체다”
_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경악! 바로 그 자체다” _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 최조의 조각토굴 탄생…
6년 동안 토굴을 파며
그 위에 아로새긴 놀라운 사유들, 놀라운 조각작품들…

조각가 강대철은 이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 1978년 국전 문공부 장관상과 제1회 중앙미술 대상을 수상하고, 10여 회 개인전을 가지면서 한국 조각계의 중심, 가장 촉망받는 작가가 된다. 그러나 2005년 홀연히 조각가로서의 삶과 그가 이룬 세속에서의 업적을 접고 구도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는 곡괭이를 들고 수행 토굴을 파게 되고, 예기치 않게 점토층으로 이뤄진 산의 속살과 맞닥뜨리자 문득 조각가의 본능이 되살아나 그곳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6년여 세월 동안 조각을 하게 된다.
『강대철 조각토굴』은 종교적 사유만이 중점적으로 담긴 도서는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낸 조각토굴은 불교와 기독교를 아우르는 유일무이한 토굴이기도 하다. 토굴의 입구, 중앙 홀에 들어서면 예수가 석관 안에 누워 있는 미륵불을 내려다보는 예수부처상이 위치하고 있다. 그는 한국 현대불교계의 가장 위대한 고승이자 조계종의 종정을 지낸 성철 큰스님의 생가 터(산청 겁외사)에 자리한 성철스님 기념관의 건립계획 및 불상조형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성철 큰스님의 존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조각가에게는 기독교와 불교가 하나’라고 말하는 강대철이 토굴 위로 아로새긴 놀라운 사유들과 놀라운 조각 작품들은 전남 장흥 사자산 기슭에 한국 최초의 조각토굴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궁금증과 더불어 깊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70대의 조각가가 6년간의 수행과도 같은 조각토굴 작업의 여정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세속에서 벗어나 구도의 길을 걸으며 얻은 삶에 대한 깊은 관조의 시선은 『강대철 조각토굴』과 동시 출간된 강대철 시화집 『어느 날 문득』을 통해서도 빛을 발한다.
들어가는 말: 토굴 속에서 만난 부처
토굴 파기는 운명이었다
근원(根源)의 자리를 찾아
종교의 틀을 넘어서
첫 번째 굴: 생각, 감정, 오감이 만드는 에고
두 번째 굴: 지금 여기 현존이 실상이다
세 번째 굴: 오온(五蘊)을 징검다리 삼아
네 번째 굴: 무상(無常)을 넘어서
다섯 번째 굴: 나의 실체, 그 안에서 불성(佛性) 찾기
여섯 번째 굴: 육바라밀과 더불어 지혜의 문으로
일곱 번째 굴: 연기(緣起)의 작용, 그리고 화엄의 세계
장시 ·땅굴을 파며 노래하다
해설 ·잠적한 조각가의 지하 미술관‘강 대철 조각토굴’・윤범모
해설 ·자아를 성찰하는 토굴, 노동과 수행의 경계에서・최태만
연보
□ 사라진 조각가
조각가 강대철을 기억하십니까?
그가 홀연히 서울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습니다. 유명 조각가로서의 영예로운 삶을 버리고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사실 모두들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구도자적인 조각가였습니다. 그의 마음속 용광로는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들끓었습니다. 작품전을 열 때마다 뜨거운 호평을 받았고, 깊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삶의 궁극적인 질문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그런 운명적인 작가였습니다.
2005년, 전혀 연고도 없는 남쪽 땅 장흥 사자산 아래 살림터를 잡고 농부가 됩니다. 그의 일상은 마치 『월든』의 소로우처럼 깊은 사색으로 이어졌고, 구도자적인 삶을 사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영락없는 촌부가 된 것입니다. 그런 어느 날 그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차도 나누고 인연도 나눌 조그만 토굴을 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파낸 땅속의 지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좀 더 깊이 파 들어가자 독특한 지질이 나타났습니다. 점력 있는 흙들이 쏟아졌습니다. 견고성도 있어서 한껏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조각가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몸속에서 꿈틀 조각 본능이 발동한 것입니다.
뿌옇게 날이 밝으면 굴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벽부터 작업이 시작되면 식사 시간 외엔 온통 작업에만 몰두했습니다. 해가 지고 굴 입구가 어둑해질 때까지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하루 작업하는 시간이 10여 시간씩 됐습니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6년 동안, 아니 7년에 걸쳐 그는 지금도 조각을 다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의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 홀 그리고 일곱 개의 토굴
홀; 6·25 전쟁 중 아버지가 사상범으로 희생된 후, 홀로되신 어머니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을 물려받아 강대철은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적 정서가 형성되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종교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갖게 되었고, 진짜 예수를 찾기 위해 정신적 방황을 했습니다. 토굴의 입구, 중앙 홀을 들어서면 부조로 된 예수상이 나옵니다. 오른손을 펼쳐 보이는 수인(手印) 상반신 상입니다. 그 예수가 석관 안에 누워 있는 미륵불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미륵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조각가에게는 기독교와 불교가 하나입니다. 예수가 아니고, 부처가 아니고, 예수부처입니다.
첫 번째 굴; 예수부처상이 완성된 중앙 홀은 50평 남짓, 여러 사람이 모여 담소를 나누기에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제대로 굴을 한번 뚫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자가 고운 점력 있는 흙이 조각가의 심사를 흔든 것입니다. 첫 번째 굴을 파기 시작하면서 그는 주제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의 ‘나’라고 하는 존재는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안, 이, 비, 설, 신, 의(眼·耳·鼻·舌·身·意)는 왜곡되어 있습니다. 온갖 분별심의 에너지로 뒤엉켜 분주하고 안정돼 있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형상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육근(六根)을 형상화한 굵은 뿌리들, 굴의 오른쪽 입구 위의 해골과 왼쪽의 뇌의 형상 그리고 천장의 연화 문양을 새겼습니다. 머리도 없고 사지도 없는 몸뚱이만으로도 다른 차원의 경계를 체험할 수 있을 거라고 새겨보았습니다. 반대쪽으로 바라보면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림자 형상으로 보이고 그 머리 위로 둥근 구(球)의 모습이 조각돼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드러남을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 굴; 두 번째 굴의 지질적 조건이 이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조금 파 들어가니 작은 바윗돌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조각을 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불상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 공간에 모시기에 적당한 불상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리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굴; 첫 번째 굴만큼 지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조각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밖으로 실어낸 흙더미는 작은 산만큼 솟아 있어 제법 큰일을 하는 기분을 느끼며 힘든 줄 모르고 파내었습니다. 곡괭이로 흙을 파내어 삽으로 손수레에 퍼 담고 밖으로 끌고 나가 흙을 부리는 일은 막상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곡괭이질은 몸짓과 호흡이 하나가 되어 입에서는 염불 소리가 나오고 그렇게 훌쩍 하루가 지나갑니다. 흙이 너무 부드럽고 점력이 약해 굴 가운데 감실처럼 파내어 명상 공간을 만들고, 촛불을 켜 놓을 수 있는 또 다른 감실을 만들었습니다. 하루 24시간 계속 촛불을 밝혀 놓는 일은 자신이 각성 상태에 있겠다는 의지입니다
네 번째 굴; 네 번째 굴의 특이한 점은 몇 가지 종류의 흙들이 퇴적되면서 형성된 지질이라, 층을 이루면서 다양한 문양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흙 종류에 따라 지층이 일정하지 않고 두께에 따라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조각가의 머릿속에는 금세 이 벽에는 무슨 조각을 새겨야 할지가 떠올랐습니다. 무상관(無常觀)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옛날부터 구도자들은 육신의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집착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시체가 부패되어 살이 흩어지면서 살아생전의 온갖 감정들을 표현했던 형상들이 사라지고, 뼈만 남을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상함을 실감하는 수행입니다.
한쪽 벽면을 반쯤 차지할 정도 크기 면적에 실물 크기의 해골들과 인체 뼈 모양들을 조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조각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어이없는 일이긴 했습니다.
다섯 번째 굴; 다섯 번째 굴은 좀 더 아래쪽으로 깊이를 더해서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질감과 색감으로 조각가를 감동시키는 지질이었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뚫고 지금 이 시공 안에서 흙과 조각가가 만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곳보다 더 단단해 조각도를 사용했습니다.
무의식을 느껴지는 대로 표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악(惡)과 선(善)에 대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파충류, 연꽃, 의식 세계가 무의식 세계와 연결되어 엉킨 뿌리들을 조각했습니다. 거대한 뿌리의 형상 밑으로 한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곡괭이질 하나, 삽질 하나에 기도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너무나도 조각하기에 좋아 자신감까지 들었습니다. 다섯 번째 굴이 마무리되는 그해 가을은 굴 파기를 시작한 지4년 이란 세월이 지나간 해였습니다.
여섯 번째 굴; 지질의 조건은 최상이었습니다. 이곳 남도 땅 끝자락 외진 산 밑에 살림터를 옮기려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제도권 속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매일같이 회의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여섯 번째 굴은 구조 자체가 다르게 시작되었습니다. 몇 미터를 지하로 파고들어간 후 굴이 시작되었는데 완성된 굴의 길이가 20m가 되는 그야말로 깊은 지하 땅굴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뿌리 다발을 계단 삼아 내려간다는 것은 중요한 경계를 만나러 들어가는 것을 상기하도록 의도했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육신이 뒤틀리고 심하게 변형된 고행상이 거기 있습니다.
고행상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굴이 뚫려 있는데,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굴입니다. 육바라밀은 해탈 열반을 의미합니다.
열흘쯤 휴식을 취하면서 이 굴 작업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시키는 굴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연기법(緣起法)을 주제로 한 조형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굴; 일곱 번째 굴의 조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기(緣起)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합니다. 열두 개의 마디들이 모여 커다란 수레바퀴 모양을 하고, 마디와 마디 연결 부위는 서로 결속이 되어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거대한 뿌리의 중간쯤에 큼직한 뇌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좌뇌와 우뇌의 중간 부분에 태아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태아의 형상은 인류가 거듭나면서 지혜의 눈이 열림을 강조한 것입니다.

□ “경악! 바로 그 자체다”
총 길이 100m가 넘는 작업이 일단락 지어졌습니다. 조각가는 말합니다. 특정 종교의 성상(아이콘 작업)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불교를 방편으로 ‘대자유인으로서의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탐색의 도정이었다고 말이지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강대철 조각토굴’을 둘러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경악! 바로 그 자체다.”
우리 또한 그럴 것입니다. 탄성을 지르고 오래도록 감동에 젖을 것입니다.

돈황의 석굴, 특히 막고굴의 미술은 유명합니다. 토함산의 석굴암 또한 그렇습니다. 인간의, 굴을 파는 행위는 뭔가 어쩔 수 없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굴을 파는 행위는 그러므로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인간은 기도하는 동물입니다. 인류는 기도하면서 오늘날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도 장흥 땅에 강대철이라는 조각가가 파고 아로새긴 굴 하나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토의 어느 한 곳에 간절한 그 무엇이 새겨진 것입니다. 그 ‘강대철 조각토굴’은 한 조각가 개인의 작품을 넘어서 이제 우리 모두의 굴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간절한 굴이 하나씩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흥 땅 부근을 지날 때, 우리는 ‘강대철 조각토굴’을 떠올릴 것이고 그곳에 들러 큰 위로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침 4월 초파일을 앞두고 이 책을 출간하게 되어 더 뜻깊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