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강석경（４５）은 ８９년 홀연 인도로 떠났다. 딱히 무슨 추구나 여행의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 왠지 주위의 몇몇 친지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인도로 가 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도, 소설가 자신도 또렷한 이유는 모른 채. 그렇게 그는 인도로 갔다.

일행 ４명과 한 달여를 이곳저곳 떠돌며 인도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홀로 주저앉아 넉 달을 더 인도라는 공간과 대면했다. {뭔가 깊은 것이 있어 도저히 헤어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는 그곳에서 지평선을 만났다. 끝없는 지평선 위로 항아리를 이고 맨발로 가는 여인들, 사리를 걸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해지는 들녘을 걸어가는 아낙들.

강석경은 거기서 [덧없다는 말의 실체, 인간존재의 미약함]을 깨달았고 이렇게 바둥거리고 사는 것이 너무나 우스워 보였다. 장편 <숲속의 방>（８６년）과 <가까운 골짜기>（８９년）로 ８０년대를 대표하는 한 여성작가였던 강석경.

그가 근 ８년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는 그의 두 번에 걸친 인도체험에 바탕한 것이다. 인도에서 찾은 구원이라는 화두가 특유의 언어에 담겨 있다. ８９년 다섯 달간의 인도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이후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인도에서 얻은 정신적 충일감 때문에 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인도기행]만 계간지에 연재한 뒤, 다시 인도로 떠나, 거기서 살아나갈 준비에만 전념했다. 학생비자를 받아 ９１년 가을 다시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１년반 세월. 그는 온전히 인도에 파묻혔다.

{자연이 교사}라 말한 타고르가 세운 대학이 있는 교육촌, 소읍 샨티니키탄이 그의 거처가 됐다. 캘커타에서 기차로 ３시간여 떨어진 곳이다. ２년만에 다시 찾은 인도. 그곳에서 그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한국인일 정도로 해외여행 자유화 등의 바람을 타고 사정은 변해 있었지만, 인도는 여전히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그를 감싸안았다.

[세상의 별들은 다…]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문희의 심정은 바로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도에 와서 주원은 이렇듯 뜰을 산책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인도에선 아침이 신성하다. 서울에선 아침이 늘 싫었다. 눈을 뜨면 창으로 건너다 보이는 아파트 숲…. 그래, 처음 치와울라에 와서 새벽 하늘을 박차고 날으는 까마귀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은 벌써부터 인도를 열망하고 있었고, 운명의 저장고인 제 별 자리는 줄곧 이 길을 비추고 있었던 듯 느껴졌다}

[라사… 사각거리는 비단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낙타 발굽이 묻어 있는 사막의 이름 같기도 하다]. 라사는 인도가 아니다. 티베트이다. 소설은 각각 결혼생활에서 자신의 삶을 실현시킬 수 없었던 자매가 인도에서 만나 새로운 삶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 문희는 마날리라는 지방으로 여행하다 티베트 출신의 한 여행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라사]와 그에 얽힌 티베트 민족의 이야기를 듣는다. {겸손이 그들의 운명이라니, 땅 속에 벌레만 나와도 일손을 놓고 소란을 피운다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불현듯 마음속에 한 그루 나무가 자라는 것을 느끼고, 머리 위에 쏟아지는 은덩이 같은 별을 발견한다. 존재의 빛이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인도를 거대한 여성성의 상징으로 묘사하며 폭력에 지친 영혼들에게 진정한 삶 또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 다. 원체 과작인 강석경.

{늘 문학이 사슬처럼 나를 옭아매었고 늘 글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고 하는 그. 자신을 발견하고 등단시킨 이어령 선생에게 가끔 마음속으로 투정까지 부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지금은 다시 한 지방 소도시에 칩거하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구상중이다.
---한국일보 하종오 기자 ( 1996-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