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들 가운데 하나가 "최초의 현대인"이다. 최초의 현대인이라니? 예술과 삶 사이의 벽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던 19세기 끝 무렵 온몸을 던져 그 벽을 허물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는 최초의 현대인일 수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지난 세기가 보여주듯, 현대란 그 구성원이 비현실(또는 예술)을 현실(또는 삶)로, 현실을 비현실로 바꿔가기 위해 애쓰던 시간 공간이 아니었던가.

이 시간 공간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답은 와일드 자신의 경구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지 두 종류의 비극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든 문화-정치-사회적 변혁을 통해서든 부단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고 또한 이에 성공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비극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계의 무너뜨림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했던 낙원을 우리는 끝끝내 얻지 못했다. 여기에 우리의 또 하나 비극이 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 선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난 세기에 우리가 경험했던 비극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찰은 지난 세기의 문턱에서 우리의 비극을 온몸으로 예견하면서 숨을 거두었던 와일드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될 수 있으리라.

이런 의미에서 그의 사후 100주년이 되는 올해에 그의 산문집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음은 하나의 주목할 만한 사건일 수 있다.

예지와 재기가 넘치는 경구와 단상, 콩트와 서한문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은 와일드 자신의 친구였던 로버트 로스가 편집했던 『오스카 와일드 산문선』을 바탕으로 하여 불문학자인 강주헌 씨가 새롭게 편역한 것이다.

정성어린 번역과 세심하고 깔끔한 편집이 돋보이는 이번 산문집에서 우리는 와일드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와일드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관문일 뿐. 이번 산문집을 기점으로 와일드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와 연구가 뒤따르기를 바란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면, 유려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단조로움이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는 점. 예컨대, 「비밀이 없는 스핑크스」를 장식하는 그 무수한 종결 어미 "-다"와 "-어"는 읽는 이의 호흡을 가쁘게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우리말의 특성과 관계되는 것일까? 아니면 번역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일까? 과연 이를 뛰어넘을 묘책은 없는지?
---조선일보 장경렬(문학평론가,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 2000-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