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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의 눈으로 본 금강산-그들이 본 우리 29 (그들이 본 우리 29)
| 2023년 6월 30일
브랜드 : 살림인문
쪽수 : 248 쪽
가격 : 27,000
책크기 : 148*192
ISBN : 978-89-522-4804-6-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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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그때 그들’ 눈에도 명산(名山)이었다
조선 말~일제시대 금강산을 찾은 서구인 64명의 생생한 기록

1889~1945년까지 금강산을 찾은 서양인들이 1892년부터 20세기 말까지 남긴 여행기·보고서·안내서 73종 총망라

근대 초 금강산을 찾은 서양인들은 9개국 출신 64명에 이르며, 이들이 남긴 단행본과 기고문들은 입수한 것만 6개국어 73건에 이른다. 그중 60건가량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것들이다. ‘그때 그들’의 눈에 비친 금강산의 이모저모를 약 50장의 사진·그림·지도와 함께 소개하고, 권말에 작가별 해제를 담았다.

서양인이 본 옛 금강산
“일본과 중국의 서부 지역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본 적이 없다.” (이사벨라 비숍, 영국, 1898)
“한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경이로운 곳이었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곳 중 하나.” (찰스 어드먼, 미국, 1922)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보기 드문 산.” (스텐 베리만, 스웨덴, 1938)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금강산 만이천 봉. 금강산은 조선이나 동아시아에서만 이름난 명산이 아니라,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이 보기에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곳이었다.
구한말 1889년 주한 영국 부영사 찰스 캠벨이 금강산을 찾아 사진을 찍고 손수 그린 지도와 함께 영국 외무부 및 의회에 보고서(1892)를 제출한 것을 필두로, 일제시대까지 금강산을 찾은 서양인은 확인된 것만 영국·미국·독일·프랑스·캐나다·폴란드·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웨덴 등 9개국 출신(국적 미상 1명 포함) 출신 64명(단체 1포함)에 이른다. 『금강산(그들이 본 우리 29)』(김장춘·알렉산더 간제 지음, 살림, 2023)은 이들이 남긴 단행본·보고서·기고문 73건을 모아 간추려 소개한 책이다. 입수한 것만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웨덴어 6개 국어로 된 문건들 중 60건 가량은 그전까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백 년 전의 비구·비구니들과 행자들 모습, 6·25 때 소실된 장안사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포함해 거의 50장에 이르는 사진과 지도, 더러는 저자가 손수 그린 그림까지, 빛바랜 도상들이 금강산의 속살을 남김없이 보여 준다.

시간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책이 소개하는 저자들이 금강산을 찾은 것은 가까이는 근 80년 전, 멀리는 130여 년 전이다. 조선에서 대한제국, 일제시대를 차례로 거치며 금강산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교통과 숙박시설의 확충으로 접근이 수월해진 이면에, 금강산과 주변과 사람들의 옛 문화가 사라져 가는 아쉬움도 문헌들엔 담겼다.
문헌들이 소개하는 금강산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시간의 장벽뿐만 아니라 언어의 장벽, 그것도 이중 장벽을 넘어야 했다. 일례로, 시대가 가까워 올수록 금강산과 주변의 지명·사찰명이 일본어 독음으로 변하고, 그것이 제각기 다른 유럽어로 왜곡된다. 일례로 장안사(長安寺)는 ‘조안지(Choanji)’가 되었고, 내금강(內金剛)은 ‘우치곤고(Uchi Kongo)’가 된다. 아예 ‘울음 연못’ ‘강아지길’로 번역된 것은 다른 자료를 뒤져 ‘명연담(鳴淵潭)’ ‘개잔령’임을 확인해야 했다.
수도사 노르베르트 베버가가 촬영한, 주지나 방장 스님일 법한 일행의 표정까지 생생한 사진 하나(46쪽)에는 절의 이름이 없다. 다행히 사진은 뒤편 대웅전의 “무단역무장, 수처현청황(無短亦無長, 隨處現靑黃. 정해진 길이도, 불변의 색깔도 없다)”라는 대련(對聯)까지 또렷이 담고 있어서, 이곳이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관계있는 건봉사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내금강 묘길상(妙吉祥) 사진들 중엔 불상의 좌우가 반대로 찍힌 것도 있는데(24쪽), 김홍도의 그림을 토대로 어느 것이 뒤집어 인쇄된 것인지 판별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확보한 자료들
자료들 대부분은 명지대학교 LG한국학자료관(구 명지대-LG연암문고)에 소장된 것들이지만 10여 건은 이번에 처음 발굴되었다. 공저자 김장춘 교수(前 명지전문대 영어과, 명지대 LG한국학자료관 연구원)가 소개하는 일부 뒷얘기들은 한 편의 첩보물을 방불케 한다.
이탈리아인 조바니 마스투르치가 1925년 이탈리아 군사잡지에 기고한 글은 인터넷에 떠도는 서지사항 외에 실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래전 알게 된 이탈리아 현지의 한국인 여성과 극적으로 카톡이 연결되어, 무려 149번의 메시지가 오간 끝에 13쪽 분량의 이탈리아어 복사본을 입수할 수 있었고, 마침 이탈리어어를 전공한 가족이 있어 내용을 해독할 수 있었다.
서지사항만 입수한, 미국의 대학도서관들을 뒤지면 혹 나올 것 같은 정기간행물 기고가 5건 있었다. 책 제작이 거의 마무리될 쯤 마침 부인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열리는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어, 동행한 길에 한국인 지인의 도움을 얻어 그중 4건의 실물을 확인하고 복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완간
『금강산』은 한국문학번역원-살림출판사가 기획한 ‘그들이 본 우리 총서(Korea Heritage Books)’의 29권 째이자 완간(完刊)편이다.
‘그들이 본 우리’는 2008년 『임진난의 기록』(제1권, 루이스 프로이스 지음, 정성화·양윤선 옮김), 제5권 『세밀한 일러스트와 희귀 사진으로 본 근대 조선』(제5권, 김장춘 엮음) 등 7권으로 시작해, 16세기부터 일제하 20세기 중엽까지 세계인의 눈에 비친 ‘신선한 나라’ 조선의 모습을 되짚어 ‘오늘의 우리’의 원류를 되짚는 기획이었다. 국내 일반은 물론 학계에조차 알려지지 않은 서양 고서(古書)와 희귀본들을 상당량 소개함으로써 역사·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한국학 전반에 기여한 15년간의 장정이 막을 내린다.
지도
금강산 여행기를 남긴 서양인들

제1장 금강산
개관 | 내금강 | 백천동 계곡 | 만폭동 계곡 | 외금강 산록 | 외금강 동사면 | 해금강

제2장 지리와 자연
지명 | 경관, 지형, 지질 | 기후와 날씨 | 동식물

제3장 사찰과 사람들
금강산 사찰 개관 | 금강산 주요 사찰 | 금강산 사람들 | 금강산의 경제적 가치

제4장 금강산의 전설

제5장 금강산의 역사
조선시대까지의 금강산 | 구한말~일제강점기의 금강산

제6장 저술과 저자 소개

참고문헌
쓰고 나서
▶ 시리즈 소개

총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수집·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서양인이 남긴 조선의 기록만을 엄선하여 2008년부터 출간해온 국내 유일의 총서이다. 발간·미발간본 포함, 국내 다른 기관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있다. 이런 희귀본들이 국내에서 빛을 보게 되어 동북아 지역과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분야 및 한국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단 한 종밖에 없는 도서를 찾아 전 세계 고서점을 뒤져 가격에 상관없이 수집했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어 우리 문화와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조선 말기인 1889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한국의 금강산을 찾은 64명의 서양인 및 단체가 1892년 이후 남긴 금강산 여행기 73종을 수집, 발췌, 번역, 비교해 종합한 결과물이다. 이 책 이전까지 국내에 소개된 자료는 그중 10건 안팎밖에 되지 않으니, 무려 60건가량의 자료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셈이다. 서양인이 남긴 최초의 금강산 사진은 영국의 조선 주재 부영사 찰스 캠벨(Charles William Campbell 1892)이 1889년에 찍은 10여 점이다. (…) 그 밖에 단행본, 학술지, 신문・잡지 기사에 실린 금강산 사진과 삽화, 지도 중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소개한다. _서론, 12~13쪽

이 책이 소개하는 저서와 기고문(논문, 수필, 여행기, 기사 등) 대다수는 명지대학교 LG한국학자료관(구 명지대–LG연암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그 밖에 국내외 도서관과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들도 있고, 존재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아쉽게도 끝내 실체를 찾지 못한 자료들도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발굴, 수집한 이 서양 자료들은 우리가 지금껏 알던 모습과는 다른, 당시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불교와 유교, 무속 신앙이 기독교라는 새로운 세력과 만나는 순간을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금강산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살아 숨쉬던 당시의 상황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이들이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기록은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_서론, 17쪽

서양인들은 흔히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세계의 유명한 명승지에 견주었다. 독일인 지크프리트 겐테(와 영국 여성 오드리 해리스는 금강산을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돌로미티(Dolomiti)산맥에 견주었다. 해리스는 또 비로봉에서 본 장관을 역시 아름답기로 유명한 요르단 페트라 근처의 예벨하룬(Jebel Harun)과 비교하며 극찬했다. 독일 수도사 노르베르트 베버도 “알프스풍”이라는 수식어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해리 프랭크(1941) 역시 “하얀 대리석처럼 밝고 깨끗한 봉우리를 수천 개나 가진 산은 금강산 외에 본 적이 없다”고 극찬했다. 영국 하원의원이자 인도 총독을 지낸 조지 커즌 경은 금강산의 단풍이 캘리포니아 협곡만큼 아름다우며 계곡과 숲은 그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 몇몇 이들은 그 아름다움에 비할 대상을 찾지 못하자 문학적 표현까지 끌어왔다. 영국인 헨리 버제스 드레이크는 “『신바드의 모험』에 금강산 버전을 새로 추가하고 싶다”고 기록했다. _제1장 금강산, 21~23쪽

서양인들의 금강산 여행기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저마다의 언어로 되어 있다. 베리만은 모국어인 스웨덴어(1937)로 기록하거나 출판한 것을 영어(1938)와 독일어(1944)로 재출간했다. 따라서 지명 표기도 제각각이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자기들 귀에 들린 한국어 지명을 최대한 가깝게 로마자로 적으려 했지만 표준화된 표기법이 없어 언어에 따라 지명과 표기가 제각각으로 나타난다. 일제하 금강산을 여행한 저자들은 일본식으로 읽은 지명을 혼용했고, 한국식 이름을 아예 적지 않고 일본식으로만 일관한 저자도 있다. 뒤로 갈수록 전체적으로 일본식 지명을 쓰는 빈도가 늘었는데 이는 아마 일본인 가이드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_제2장 지리와 자연, 44~45쪽